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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1 하나님의 좋은 친구 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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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갈릴리교회
댓글 0건 조회 726회 작성일 21-07-1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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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될 것은 더욱 확실합니다. “
(롬5:10, 쉬운성경)

하나님은 나의 삶의 있어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길 원하신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다. 그분은 우리의 창조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심판자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인되신 분입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정말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으시는 그분이 바로 나와 친구가 되길 원하시다니..
“ 수준이 맞아야 놀지... ” 이런 말을 기억하는가? 우리의 교제의 모습을 보아도 하나님의 이러한 태도가 얼마나 대단한건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것’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누리고자 하셨던 관계의 가장 바른 모습을 보여주는 예가 ‘에덴동산’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사귐을 가졌는가? ‘친구’의 모습이었다.
의식도, 예식도, 종교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친밀한 관계’ 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후의 역사도 알고 있다. 인간은 타락했고, 이 관계는 깨어졌다.
하나님은 준엄한 심판주였고, 인간은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소수의 사람들의 특권이었다.
모세, 아브라함, 다윗, 욥, 에녹, 노아...)
이러한 관계는 다시 하나님께서 바꾸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친밀함의 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셨을 때에 성경은 놀라운 일을 묘사하고 있다.
마가복음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의 담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통해서 누구나 하나님께 나아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 (롬5:11)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정말 놀라운 선물을 주셨다. 우리는 죄인이었는데 우리를 자신의 피로 씻으시고 자신의 친구로 삼아주신 것이다.
“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15:15)

하나님은 나에게 아주 특별한 관심을 가지신 분이다. 이 얼마나 행복한가?
“ 그분은 너희와의 관계에 대해 열정을 가진 하나님이시다. ” (출34:14,nlt)
우리의 가장 큰 특권은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인간이 누리는 특권,
혹은 인간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누리는 특권)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관연 어떻게 하나님과 아름다운 우정을 만들어 갈 것인가?
우리는 성경 속에서 하나님과 친구였던 사람들을 통해서 우정을 만드는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 6가지의 이야기 중에 오늘은 2가지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다.

※ 하나님과 가장 좋은 친구가 되기 원한다면....

1)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친밀함은 서로의 만남을 통해서 나타난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 나가는 것 만으로는, 하루의 시작을 기도로 시작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과 흡족한 우정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스케줄의 한 부분 이상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내 삶의 전체에 함께하는 좋은 친구가 되길 원하신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분과 단둘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도 보여주셨듯이 단 둘의 시간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만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과 함께하고 그분의 임재하심을 인식한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될 수 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 살전5:17) 하나님은 나와 끊임 없이 대화하길 원하신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교제할 수 있을까?
[ 하나님의 임재 연습 ] 이라는 17세기 로렌스 형제에 의해 쓰여진 고전이 있다. 그는 수도원의 조리사였다.
그는 식사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과 같은 가장 일상적인 일을 하나님과의 교제로 바꿀 줄 알았다.
그는 이야기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태도를 바꾸는 것이라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을 위해 하는 행동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게서 원하시는 가장 이상적인 예배의 모습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에덴 동산에서의 예배는 참석해야 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태도였다.
“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모든 곳에 계시며 모든 것 안에 계신다. ” (엡4:6 ncv)
매 순간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을 느끼라. 그리고 그에게 고백하라.
내 입을 통해서 이것을 계속하면 할 수록 우리는 친밀한 하나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한 로렌스는 또하나를 제의한다. 어려운 말의 긴 기도를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하루 동안 짧은 대화와 같은 기도를 하는 것이다.
“ 기도에 길고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하지 말라, 긴 말들은 대부분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 맞는 말 아닌가?
숨기도(Breath Prayer)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한 숨에 이야기 할 수 있는 짧은 문장을 통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 당신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 “ 나는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 ”
“ 나는 당신께 속해 있습니다. ” “ 당신은 나의 하나님입니다. ”
자주 고백하라.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움으로 당신을 초대할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은 이것이 임재의 ‘경험’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겐 임재가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일상에 함께 함을 인식하는 것이다.

2) 계속해서 묵상함으로
두 번째 방법은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묵상이라고 한다.
그 분이 무슨 말을 하셨는지 모르고서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없다. 알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
 성경은 “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 (삼상 3:21)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 방법을 사용하신다.
성경을 읽거나, 설고를 듣거나, 경건 서적을 읽을 경우에 그냥 흘려보내지 말라. 그 진리를 머릿속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라.
한 문제를 놓고 반복적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걱정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해서 생각하면 그것이 묵상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방법을 안다면 이미 묵상하는 방법을 이미 터득한 것이다. 우리의 관심을 걱정거리에서 성경구절로 돌리면 되는 것이다.
말씀을 깊이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만큼 하나님과 친밀해 질 수 있다.
“ 나는 내 일용할 양식보다 그의 말씀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 (욥 23:12 niv)
"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 (시119:97)
“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 (시77:12)

하나님은 묵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의 비밀을 보이신다. 이것이 친구의 특권이다.
당신의 삶에 하나님의 뜻이 분별되어지는 축복이 임할 것이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며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라 ” (시2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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