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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8 삶을 함께 경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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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갈릴리교회
댓글 0건 조회 654회 작성일 21-07-2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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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 (골3:15)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시133:1)

삶은 공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함께 삶을 경험하기를 바라신다. 함께하는 공유된 경험을 교제 (fellowship) 라고 부른다.
 당신에게 교제란 어떤 의미인가?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어울리며, 음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인가?
성경적 의미의 교제는 그렇지 않다. 진정한 교제는 함께 삶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 진실한 나눔, 실제적인 섬김과 희생적인 베품과 위로가 성경적인 의미의 교제이다.
 물론 이 모습이 모든 성도와 그런 모습을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닿아있는 ‘그 사람’과는 바로 이런 모습의 교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제의 크기가 클 수는 없다. 작을 수록 좋다. 그렇지만 그 안에 생명력이 있는 교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작은 그룹의 만남 속에 엄청난 약속을 하셨다.
“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마18:20)

우리는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특히 소그룹)과의 만남을 통해서 진정한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이야기 하는 교제의 모습은 무엇인가?

1) 진실함이 있는 교제이다.
진정한 교제는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다. 진실하며 때로는 아주 깊은 나눔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진실하게 이야기할 때만 가능하다.
상처를 나누고 감정을 표현하며, 실패를 고백하고, 의심을 보이고, 두려움을 시인하고, 약점을 깨달으며, 기도를 부탁한다....
우리의 교제에선 바로 이런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가면을 쓰고 만나서 자기방어를 하면서 가식적인 친절을 베풀고, 얕은 대화를 나눈다면 그것은 형식적인 교제이다.
“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요일1:7-8)
빛 가운데 모든 것을 개방해야 한다.
물론 진실해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용기가 필요하며 또다시 상처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바로 이것이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할 길이다.
“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 (약5:16)
위험을 감수함으로 성장한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여줘야 한다.

2) 상호 의존하는 교제이다.
상호의존은 주고 받는 것이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고백은 의사와 환자와의 만남이다. 이것이 어떻게 교제인가? 상호의존은 교제의 핵심이다.
상호 의존적인 관계, 책임을 나누고, 서로 돕는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제이다.
“ 나는 우리가 믿음으로 서로를 돕기 원한다. 너희의 믿음은 나를 도울 것이고 나의 믿음은 너희를 도울 것이다. ” (롬1:12 NCV)
서로는 결코 일방통행이 아니다. 성경에는 ‘서로에게’ ‘서로를 위해’라는 표현이 50번이상 등장한다.
“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롬14:19)
힘쓰라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제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다.
교제의 책임은 당신에게 영원의 친구를 허락할 것이다.

3) 공감이 있는 교제이다.
공감이라는 것은 충고를 하거나, 빠르고 표면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그 고통을 나누는 것이다. 공감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 나도 네가 겪고 있는 것을 안다.
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생각도 아니다.” 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공감을 통해서 두 가지 근본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다. 즉 이해받고, 감저의 정당성을 확인받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감정을 확인해주고 이해해 줄 때마다 우리는 교제를 쌓아간다. 받아줘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2)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때는 바로 심각한 위기, 깊은 슬픔, 그리고 의심의 상황을 지날 때이다.
바로 그때에 믿음의 친구.. 나의 아픔을 받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에도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바로 그런 하나님의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욥이 고통받고 있을 때에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러나 욥의 친구들은 그에게 계속적으로 정답만을 제시하려고 했다.

4) 자비를 경험할 수 있는 교제이다.
교제는 은혜의 장소이고, 이곳에서는 우리의 실수가 드러나지 않고 덮어진다. 교제는 자비가 정의보다 강할 때에 일어난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 (고후2:7)
용서 없이는 교제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신다. “ 서로에게 악의를 품지 말아라 ” (골3:13 LB)
우리는 죄에 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면 때로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상대방에게 받은 상처가 교제의 근본을 파괴한다.
“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3:13)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베푸신 자비의 모습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동기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 것 이상의 용서를 성경은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의 용서의 범위가 하나님의 용서보다 큰가? (일만달란트 빚졌던 종과 백 데나리온 빚진종)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에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나의 에너지를 복수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신뢰와 용서의 차이를 아는가? 용서는 과거를 잊는 것이다. 신뢰는 미래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용서는 상대방이 그것을 구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바로 해야 하는 것이고, 신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누군가가 우리에게 계속적으로 상처를 준다 해도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용서하기를 바라시지만,
그들을 바로 신뢰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으신다. 또한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것도 원하시지 않느다.
상처를 주는 자도 시간이 지남을 따라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신뢰를 주어야 한다.
진정한 교제는 용서를 경험케 한다.
당신의 삶에도 용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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