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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1 교회를 보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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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갈릴리교회
댓글 0건 조회 653회 작성일 21-07-3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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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엡4:3)

“ 무엇보다 사랑이 너희의 삶을 인도하게 하라.
그러면 교회 전체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 (골3:14 LB)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삼으셨다. 우리는 교회라는 영적인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 가정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가족된 우리들의 거룩한 의무이다.
가정이 온전히 하나된 모습. 이것이 진정한 에덴동산의 모습이 아닌가?
성경은 교회의 하나됨에 대해서 지극히 강조한다.
이 하나됨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본질이고 핵심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절대로 분열하길 원하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로마 군병에게 잡히시기 전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서 기도하셨다.(대 제사장의 기도)
 “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요17:21)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라면 교회의 하나 됨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우리는 이 사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이 하나 됨을 지켜나갈 것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 됨을 위한 실제적인 충고를 해준다.

1) 차이보다는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다 다른 환경에서 삶을 만들어 오던 사람들이다. 사람 개개인에게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런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묶어주셨다.
다른 이들이 하나의 관계로 묶인다는 것은 ‘목적의 공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갈등은 공유된 목적 이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 해석할 때에 생겨난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생겨난다.
 우리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적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할 수 밖에 없는 목적들 그리고 우리 안에서 나누는 모든 것도 ‘목적을 통한 나눔’이 되어야 한다.
한곳을 바라볼 때에 흔들리지 않는다.

※ ‘삶의 목적’을 함께 조율하라.  (같이 말씀 듣고, 같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
※ 함께 바라보는 목적에 초점을 맞추라. ( 본질이 일치하면, 비본질의 다툼은 무의미하다.)

2) 현실적인 기대를 하라.
이미 이루었는가? 아니면 이루어 갈 것인가?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를 이루어 가라고 하셨지.
이미 완벽하게 만들어졌다고 선언하시지 않았다. 이것은 앎으로 인해서 이루어 질 수 있는 오류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교제가 어떤 것인지 발견한 후에는 교회 내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절망하기 쉽다.
그 절망은 때로는 교회를 비판하고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이 교회에 대한 비판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교회 안의 갈등, 상처, 위선, 인색함, 형식주의 오늘날의 교회가 품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교회의 불완전함은 당연한 것이다.

 교회가 영접하여 가족으로 삼은 사람들은 천사가 아니라. 죄인이었다.
죄인이 들어와서 신앙과 인격이 성숙해져 가는 곳이 교회인 것이다.
아직 바뀌지 않은 미성숙한 신앙과 인격의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 교회이다. 교회가 완벽할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나보다 덜한 사람을 끌어 안을 수 있고, 나는 나보다 성숙한 사람을 본받으면서 자랄 수 있는 것이다.
※ 교회의 완벽함의 환상을 버리라. (오히려 완벽하다면 나는 들어갈 수가 없다. )
※ 남의 미성숙을 이끌어 주고, 타인의 성숙함을 본받으면서 자라라

3) 비판하기 보다는 격려하라
이끌어 줌의 방법은 비판이 아닌 격려다.
공동체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것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은 항상 더 쉽다.
사탄은 우리에게 비판하는 냉철한 머리를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비판은 저절로 된다. 아주 예리하게....
그렇지만 잘못 사용하는 비판은 아주 날카로운 검이 되어서 사람의 마음에 박힌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공동체를 위해서 서로를 비판하거나 비교하거나 판단하지 말라고 계속적으로 경고하신다.
(롬14:13, 약4:11, 엡4:29, 약5:9)

우리가 다른 믿는 사람을 판단할 때마다 네 가지의 일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리게 된다. ( 하나님의 자리를 뺏는 것) 우리의 교만과 불안을 드러내게 된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또한 교회의 교제를 해치게 된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우리의 동료이다. 그렇다면 비판, 비교, 판단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끌어줌 즉 격려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 우리의 모든 힘을 서로 사이좋게 쓰기로 동의하자. 격려하는 말로 서로를 돕자. 잘못을 지적해서 서로를 끌어 내리지 말자 ” (롬14:19, Mag)

4) 험담을 귀담아 듣지 말라
좋지 못한 소문 (험담)은 관계에 있어서 치명적이다.
교회의 가족들에 대한 험담이 교회 안에서 공공연히 돌아다닌다면 그 교회는 결코 하나될 수 없다.
험담을 해서도 안되지만, 험담에 귀 기울이는 것도 안된다. 이것은 같은 범죄이다.
험담에 맞장구치는 그 순간 우리는 한 가족을 가족에서 찢어내는 순간이다.
갈등은 소문이 치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심하게 곪게 만드는 것이다.
험담의 순간에 당신의 지혜를 발휘하라. 화제를 다른 것으로 옮기던지.
아니면 당신이 그것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라. 정 안되겠으면 분명히 말을 하라
“ 그만하세요. 저는 그것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과 직접 이야기 해보셨나요? ”
험담하는 사람은 오히려 피해야할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 두루 다니며 험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잠20:19)  사랑으로 험담을 잠재우라.
 “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 (잠26:20)

5) 갈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라.
갈등이 있는한 교회가 편안할 수 없다. 갈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난 장에 이야기 했던 원칙들을 기억하라. 문제를 오래 끌어서 좋은 것이 없다.
예수님은 교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세단계의 간단한 과정을 제시해 주었다.
“ 만일 네 형제가 너에게 상처를 주면 그에게 가서 이야기하고 너희 둘이서 문제를 해결하라.
만일 그가 너의 말을 듣는다면 너는 친구를 얻은 것이다. 만일 그가 듣지 않는다면 두세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이야기 하라.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이를 교회에 알리라. ” (마18:15-17 Mag)

6) 목회자와 지도자를 지지해 주라.
모임이 하나됨을 지키려면 지도자의 권위가 세워져야 한다. 스스로 세워가는 권위가 있고, 밑에서 세워주는 권위가 있다.
아름다운 모습은 밑에서 세워주는 권위이다.
완벽한 지도자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을 교회의 권위자로 세워주셨다. 
수 많은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은 참으로 여려운 일이다. 그들은 목회자 한사람을 보지만, 목회자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목회자가 자신을 기쁘게 하기를 원한다. 이것은 불가능한 임무이다. 이것은 예수님도 하시지 못한 일이다.
성경은 우리를 섬기는 자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분명히 말씀하셨다.
“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 (히13:17)
목회자와 지도자들은 우리의 격려와 기도, 감사,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라. 사랑해 주어라. 그들이 당신을 위해서 기쁘게 생명을 바칠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가 속한 교회를 조금 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이 모습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정말 많은 영혼을 맡기실 것이다.
준비가 되어진다면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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